가와바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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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와바타 신고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와 3루수, 1루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05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2015년 수위 타자와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동메달을 획득했고, 2021년에는 대타로 맹활약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뛰어난 배트 컨트롤과 승부 근성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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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1950년 창단되어 국철, 산케이 시대를 거쳐 야쿠르트가 인수 후 현재의 팀명으로 변경되었으며, 노무라 가쓰야 감독 시절을 포함하여 일본 시리즈 우승 6회를 기록하는 등 센트럴리그의 강팀으로, 독특한 응원 문화와 마스코트로도 유명하다.
가와바타 신고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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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내야수 |
소속 구단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등번호 | 5 |
타석 | 좌투 |
투구 | 우투 |
생년월일 | 1987년 10월 16일 |
출생지 | 오사카부가이즈카시 |
데뷔일 | 2006년 10월 9일 |
데뷔 구단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통계 (2023 시즌 기준) | |
타율 | .294 |
안타 | 1,086 |
홈런 | 40 |
타점 | 403 |
도루 | 17 |
선수 경력 | |
소속 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6–현재) |
수상 경력 | |
수상 내역 | 1× 일본 시리즈 우승 (2021년) 2015 CLCS MVP 1×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 상 (2015) 2× NPB 올스타 (2015-2016) 1×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상 (2015) 1× 센트럴 리그 타격왕 (2015) 1× 센트럴 리그 최다 안타 (2015)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 | 일본 |
2015 WBSC 프리미어 12 | 2015년 도쿄 3위 |
일본어 표기 | |
일본어 이름 | 川端 慎吾 (Kawabata Shingo) |
참고 정보 | |
같이 보기 | 가와바타 유키(육상 선수) |
계약 갱신 연봉 | 2400만 엔 (2025년) |
SSK 대담 | 가와바타 신고×가와바타 유키 남매 대담 |
2. 프로 입단 전
가와바타 신고는 소프트볼로 국민체육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카이즈카 리틀에서 투수 겸 유격수로 야구를 시작했다.[5] 카이즈카 3중 재학 중에는 경식 클럽 "올 사야마 보이즈"에 소속되어 투수 겸 유격수로 활약했다.
와카야마 시립 와카야마 상업고등학교(현·와카야마 시립 와카야마 고등학교) 진학 후 본격적으로 유격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4년 여름의 고시엔에 출전하여 2회전에서 세이코가쿠인에 패했다. 가와바타는 2경기에서 8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2005년 봄의 센바츠에서는 2회전에서 준우승팀인 카무라 학원과 대결하여 패퇴했다. 가와바타는 에이스 노가미 료마에게 홈런을 쳤다. 여름 현 대회는 준결승에서 패퇴했다. 그 후 제6회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의 선발 멤버로 선출되었다. 타율.462로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통산 33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2학년 후배로 마스다 나오야가 있었다.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회의 3순위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지명되어 계약금 4,500만 엔, 연봉 480만 엔(금액은 추정)으로 입단했다.
2. 1. 유소년 시절
가와바타 신고는 소프트볼로 국민체육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이즈카 리틀에서 투수 겸 유격수로 야구를 시작했다.[5] 가이즈카 시립 제3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경식 야구 클럽인 '올 사야마 보이즈'에 소속되어 투수 겸 유격수로 활약했다.2. 2. 고등학교 시절
와카야마 시립 와카야마 상업고등학교(현 와카야마 시립 와카야마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유격수로 활약했다.[5] 2004년 여름 고시엔에 출전하여 2회전에서 세이코가쿠인에 패했으며, 가와바타는 2경기에서 8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2005년 봄 센바츠 2회전에서 카무라 학원에 패했는데, 이때 가와바타는 노가미 료마에게서 홈런을 쳤다. 그해 여름 현 대회 준결승에서 패한 후, 제6회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타율.462로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고등학교 통산 33홈런을 기록했다.[5]3. 프로 경력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2006년 ~ )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 2006년 - 2011년: 유망주에서 주전으로 ==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3순위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1]
2006년 캠프를 1군에서 시작했다. 개막 1군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2군에서 고졸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79경기에 출전했다. 10월 9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 출전(2타수 무안타)을 했고, 10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2번째 타석에서 공식전 첫 안타와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2경기 만에 벤치에 올랐다. 구단 역사상 드래프트 회의를 거친 고졸 1년차 야수가 1군 경기에 출전한 것은 1987년 1경기에 출전한 도바시 가츠유키 이후 약 20년 만이었다.
2007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던 중 8월 22일 경기에 왼손 약지가 골절되어 재활로 인해 남은 시즌 출전이 불가능했고, 10월 중순의 피닉스 리그에서 실전에 복귀했다.
2008년에 처음으로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10월 7일 주니치전에서 첫 타석에서 오가사와라 타카시를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5월에 1군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주로 좌타 대타로 출전했지만, 8월 23일 연습 중에 또다시 오른쪽 어깨 통증이 발생하여 등록 말소되었다. 이후 1군 출전은 없었다.
2010년, 한신 타이거스에서 후지모토 아츠시가 FA로 입단했다. 유격수 포지션을 오니자키 유지, 신인 아라키 타카히로 등과 경쟁했다. 개막 초에는 후지모토가 고정적으로 기용되었지만,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오니자키가 수비력을 살려 두각을 나타냈지만, 타격에 약점이 있어 7월 무렵부터 가와바타가 유격수 레귤러로 기용되었다. 이후 시즌 종료까지 유격수 포지션을 지키며 8번 타자로 팀의 후반기 약진에도 기여했다. 다카다 시게루감독이 시즌 중반에 휴양하면서 오가와 준지가 감독 대행을 맡아 가와바타를 적극 기용을 하였다.
2011년, 개막전에서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가와시마 게이조가 히가시노 슌에게 사구를 맞아 골절되면서 선발 유격수로 정착했다. 시즌 중반까지 7번을 맡았고, 6번 미야모토 신야, 8번 아이카와 료지와 함께 "공포의 하위 타선"을 형성했다. 하지만 조슈 화이트셀, 이이하라 다카시의 부진과 부상으로 시즌 중반부터 3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9월 말에는 2할 9푼대로 타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부진에 빠져 10월 19일 왼손목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되었다. 병원 검사 결과 "왼손 TFCC(삼각 섬유 연골 복합체) 손상"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아(9월 14일 히로시마전에서 슬라이딩하다가 왼손을 땅에 강타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6] 시즌으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 2012년 - 2016년: 전성기 ==
2012년, 가와바타는 주로 3번, 5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298, 4홈런, 49타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를 넘어서는 성적이었다. 원래 유격수였지만, 미야모토 신야의 휴식일에는 3루수로 40경기 이상 출전했고, 시즌 막바지에는 1루수 하타야마 가즈히로의 부상으로 1루를 지키기도 했다.[6]
2013년 4월 22일, 왼쪽 발목 관절 수술을 받고 실전 복귀까지 2개월이 걸릴 것으로 발표되었다.[7] 7월 9일에 복귀했지만, 컨디션 조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8월부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70경기에 출전, 규정 타석 미달에도 타율 0.311, 5홈런(규정 타석의 절반 정도 타석 수에서 역대 최고)을 기록했다. 9월에는 생애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오프 11월에는 타이완에서 열린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8]
2014년, 3루수 등으로 커리어 하이인 142경기에 출전하여 야마다 테츠토 등과 함께 타선을 이끌었다. 주로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공격형 타선을 구성할 때는 2번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타율 3할 이상, 10홈런(커리어 하이)을 기록했으나, 수비에서는 수비율 .957, 14개의 실책을 기록했다.[9] 오프에 2,9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8,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0]
2015년, 마나카 미쓰루 신임 감독의 구상 하에 2번 타자로 개막 선발 출전했다. 이후 팀 사정으로 3번을 맡았지만, 올스타 이후 야마다 테츠토가 3번으로 이동하자 2번으로 완전히 고정되었다. 리그 1위인 195안타, 타율 0.336으로 수위 타자와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7월 16일, 제1회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 1차 후보 선수로 선출되었고,[11] 9월 10일에는 일본 대표 후보 선수로,[12] 10월 9일에는 최종 로스터 28명에 선출되었다.[13]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연봉 8,500만 엔에서 대폭 인상된 추정 연봉 1억 6,000만 엔으로 4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부터는 모리오카 료스케로부터 물려받아 선수 회장에 취임했다.[14] 가와바타는 "다른 구단으로 가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계속 야쿠르트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라고 구단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15]
2016년,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으나,[16] 3월 2일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퇴했다.[17] 7월 1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자타구가 발에 맞아 교체되었고, 골절 진단을 받고 19일에 출전 등록이 말소되었다.[18] 9월 6일에 1군에 복귀했지만, 최종 성적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3년 연속 3할 타율을 유지했다. 4년 계약의 1년차를 마치고, 현상 유지인 1억 6,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9]
== 2017년 - 현재: 베테랑, 그리고 대타의 신 ==
2017년 추간판 헤르니아를 앓아 재활을 계속했지만, 증세가 악화되어 8월에 수술을 받았다.[20] 그 때문에 1군 출전은 없었다. 4년 계약의 2년차를 마치고, 2,0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1억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1]
2018년에는 "5번 3루수"로 개막 선발 출전하여, 개막전에서 2년 만의 홈런을 쳤다.[23] 다음 경기인 4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이마무라 타케시로부터 머리 부위 사구를 받는 사고를 당해[24], 뇌진탕 특례 조치로 4일에 등록 말소되었다.[25] 그 후 복귀했지만 타격 부진에 빠져 2군에서 재조정을 위해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 6월 6일에 1군에 복귀하여 컨디션을 되찾아[26], 타순은 주로 6번으로 3루수나 1루수로 출전했다. 7월 21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9회말 스즈키 히로시로부터 개인 통산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27] 또한 8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9회말 아데메스로부터 역전 끝내기 안타를 쳤다.[28] 최종적으로 97경기에 출전하여, 규정 타석에 미치지 못하고 타율 0.259로 완전 부활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요긴한 때에 승부 근성을 보였다. 이 해 시즌 안타 수가 77개로, 1개만 더 치면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4년 계약의 3년차를 마치고,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1억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9]
2019년에는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4월 19일에 1군으로 승격되자, 다음 날 20일 주니치전에서 6회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대타로 출전하여 야나기 유야로부터 적시타를 쳐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30] 또한 9월 4일 히로시마전에서는 6회 대타로 출전하여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31] 하지만 허리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시즌 내내 부진했고, 37경기 출전에 타율 0.164로 마쳤다. 4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마쳐, 1억 엔 감액된 추정 연봉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2][33]
2020년에는 캠프부터 2군에서 조정했지만, 대타 요원으로 1군에 승격되어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진구)에서 나카가와 고타를 상대로 2년 만에 끝내기 적시타를 쳤다.[34] 하지만 39경기 출전에 레귤러로 정착한 이후 최저 타율인 0.128로 마쳤다. 연봉도 50% 삭감된 2,000만 엔이 되었다.[35]
2021년에는 3월 3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결승타를 치는 등[36], 대타로 기용되어 히트를 양산했고, 6월 20일 주니치전에서는 진구 구장에서 7회말 2사 2점 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하여 6월 종료 시점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다.[37] 그 기세는 후반전에도 이어져, 8월 말 시점에서도 타율은 3할 6푼 전후를 기록했다.[38] 9월 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32경기 연속 무실점 중인 치아고 비에이라를 상대로 일시적으로 역전 적시타를 쳤다.[39] 최종적으로 마나카 미쓰루에 이은 대타에서의 시즌 30안타를 쳐, 타율도 0.372, 출루율 0.419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40] 득점권 타율도 4할을 넘어,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도 많이 날려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41] 한편, 최근 몇 년간의 부상을 고려한 영향인지 시즌 초부터 역할은 대타로 고정되어 선발 출전은 시즌 1번도 없었고, 수비는 후반 대타 후 1루수로 돌아가는 역할을 몇 경기를 한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대타 외의 안타는 2개에 불과했다.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는 오릭스와의 접전 끝에 12회초, 요시다 료로부터 역전 적시타를 쳐 팀 20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42] 경기 후에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43] 또한 이 해 포스트 시즌은, 10월 26일 DeNA전 타석에서 발병한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을 안고 출전했다. 가와바타는 당시를 "달리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환부에 테이핑을 칭칭 감고 출전했다."라고 후에 말했다.[44] 오프에 3,0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5,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5]
2022년에는 5월 21일 요코하마전에서 2020년 8월 28일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6번 1루수")했다.[46] 7월 4일에 말소되어, 2군 조정을 거쳐 9월 16일에 재등록되었다. 17일 주니치전에서는 12회초 대타로 출전하여 2점 적시타를 쳐 한때 3-1로 역전했지만, 그 뒷면에 스코트 맥거프의 난조로 동점을 허용하며, 3-3 무승부로 끝났다. 같은 시즌은 전반의 부진이 이어져, 최종 타율은 0.175로 저조했다. 12월 2일, 삭감 한도를 넘는 50% 삭감된 추정 연봉 2,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7]
2023년에는 개막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4월 4일에 1군에 등록되었다. 4월 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적시타를 쳐 무승부를 만드는 등 결과를 내며, 다시 대타의 비장의 카드로 기용되는 횟수가 늘었다.[48] 6월 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3번 DH로 맹타상을 기록하며 팀의 연패 탈출을 이끌었다.[49] 후반기에는 한때 부진에 빠졌지만, 최종적으로 타율 0.319, 출루율 0.385를 기록했다. 대타 안타 수는 리그 1위인 20개. 7월에는 두 번의 결승타를 쳐 승리에 기여했다.
3. 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3순위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1]2006년 캠프를 1군에서 시작했다. 개막 1군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2군에서 고졸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79경기에 출전했다. 10월 9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 출전(2타수 무안타)을 했고, 10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2번째 타석에서 공식전 첫 안타와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2경기 만에 벤치에 올랐다. 구단 역사상 드래프트 회의를 거친 고졸 1년차 야수가 1군 경기에 출전한 것은 1987년 1경기에 출전한 도바시 가츠유키 이후 약 20년 만이었다.
2007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던 중 8월 22일 경기에 왼손 약지가 골절되어 재활로 인해 남은 시즌 출전이 불가능했고, 10월 중순의 피닉스 리그에서 실전에 복귀했다.
2008년에 처음으로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10월 7일 주니치전에서 첫 타석에서 오가사와라 타카시를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5월에 1군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주로 좌타 대타로 출전했지만, 8월 23일 연습 중에 또다시 오른쪽 어깨 통증이 발생하여 등록 말소되었다. 이후 1군 출전은 없었다.
2010년, 한신 타이거스에서 후지모토 아츠시가 FA로 입단했다. 유격수 포지션을 오니자키 유지, 신인 아라키 타카히로 등과 경쟁했다. 개막 초에는 후지모토가 고정적으로 기용되었지만,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오니자키가 수비력을 살려 두각을 나타냈지만, 타격에 약점이 있어 7월 무렵부터 가와바타가 유격수 레귤러로 기용되었다. 이후 시즌 종료까지 유격수 포지션을 지키며 8번 타자로 팀의 후반기 약진에도 기여했다. 다카다 시게루감독이 시즌 중반에 휴양하면서 오가와 준지가 감독 대행을 맡아 가와바타를 적극 기용을 하였다.
2011년, 개막전에서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가와시마 게이조가 히가시노 슌에게 사구를 맞아 골절되면서 선발 유격수로 정착했다. 시즌 중반까지 7번을 맡았고, 6번 미야모토 신야, 8번 아이카와 료지와 함께 "공포의 하위 타선"을 형성했다. 하지만 조슈 화이트셀, 이이하라 다카시의 부진과 부상으로 시즌 중반부터 3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9월 말에는 2할 9푼대로 타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부진에 빠져 10월 19일 왼손목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되었다. 병원 검사 결과 "왼손 TFCC(삼각 섬유 연골 복합체) 손상"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아(9월 14일 히로시마전에서 슬라이딩하다가 왼손을 땅에 강타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6] 시즌으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2012년, 가와바타는 주로 3번, 5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298, 4홈런, 49타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를 넘어서는 성적이었다. 원래 유격수였지만, 미야모토 신야의 휴식일에는 3루수로 40경기 이상 출전했고, 시즌 막바지에는 1루수 하타야마 가즈히로의 부상으로 1루를 지키기도 했다.[6]
2013년 4월 22일, 왼쪽 발목 관절 수술을 받고 실전 복귀까지 2개월이 걸릴 것으로 발표되었다.[7] 7월 9일에 복귀했지만, 컨디션 조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8월부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70경기에 출전, 규정 타석 미달에도 타율 0.311, 5홈런(규정 타석의 절반 정도 타석 수에서 역대 최고)을 기록했다. 9월에는 생애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오프 11월에는 타이완에서 열린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8]
2014년, 3루수 등으로 커리어 하이인 142경기에 출전하여 야마다 테츠토 등과 함께 타선을 이끌었다. 주로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공격형 타선을 구성할 때는 2번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타율 3할 이상, 10홈런(커리어 하이)을 기록했으나, 수비에서는 수비율 .957, 14개의 실책을 기록했다.[9] 오프에 2,9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8,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0]
2015년, 마나카 미쓰루 신임 감독의 구상 하에 2번 타자로 개막 선발 출전했다. 이후 팀 사정으로 3번을 맡았지만, 올스타 이후 야마다 테츠토가 3번으로 이동하자 2번으로 완전히 고정되었다. 리그 1위인 195안타, 타율 0.336으로 수위 타자와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7월 16일, 제1회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 1차 후보 선수로 선출되었고,[11] 9월 10일에는 일본 대표 후보 선수로,[12] 10월 9일에는 최종 로스터 28명에 선출되었다.[13]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연봉 8,500만 엔에서 대폭 인상된 추정 연봉 1억 6,000만 엔으로 4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부터는 모리오카 료스케로부터 물려받아 선수 회장에 취임했다.[14] 가와바타는 "다른 구단으로 가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계속 야쿠르트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라고 구단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15]
2016년,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으나,[16] 3월 2일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퇴했다.[17] 7월 1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자타구가 발에 맞아 교체되었고, 골절 진단을 받고 19일에 출전 등록이 말소되었다.[18] 9월 6일에 1군에 복귀했지만, 최종 성적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3년 연속 3할 타율을 유지했다. 4년 계약의 1년차를 마치고, 현상 유지인 1억 6,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9]
2017년 추간판 헤르니아를 앓아 재활을 계속했지만, 증세가 악화되어 8월에 수술을 받았다.[20] 그 때문에 1군 출전은 없었다. 4년 계약의 2년차를 마치고, 2,0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1억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1]
2018년에는 "5번 3루수"로 개막 선발 출전하여, 개막전에서 2년 만의 홈런을 쳤다.[23] 다음 경기인 4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이마무라 타케시로부터 머리 부위 사구를 받는 사고를 당해[24], 뇌진탕 특례 조치로 4일에 등록 말소되었다.[25] 그 후 복귀했지만 타격 부진에 빠져 2군에서 재조정을 위해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 6월 6일에 1군에 복귀하여 컨디션을 되찾아[26], 타순은 주로 6번으로 3루수나 1루수로 출전했다. 7월 21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9회말 스즈키 히로시로부터 개인 통산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27] 또한 8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9회말 아데메스로부터 역전 끝내기 안타를 쳤다.[28] 최종적으로 97경기에 출전하여, 규정 타석에 미치지 못하고 타율 0.259로 완전 부활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요긴한 때에 승부 근성을 보였다. 이 해 시즌 안타 수가 77개로, 1개만 더 치면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4년 계약의 3년차를 마치고,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1억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9]
2019년에는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4월 19일에 1군으로 승격되자, 다음 날 20일 주니치전에서 6회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대타로 출전하여 야나기 유야로부터 적시타를 쳐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30] 또한 9월 4일 히로시마전에서는 6회 대타로 출전하여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31] 하지만 허리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시즌 내내 부진했고, 37경기 출전에 타율 0.164로 마쳤다. 4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마쳐, 1억 엔 감액된 추정 연봉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2][33]
2020년에는 캠프부터 2군에서 조정했지만, 대타 요원으로 1군에 승격되어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진구)에서 나카가와 고타를 상대로 2년 만에 끝내기 적시타를 쳤다.[34] 하지만 39경기 출전에 레귤러로 정착한 이후 최저 타율인 0.128로 마쳤다. 연봉도 50% 삭감된 2,000만 엔이 되었다.[35]
2021년에는 3월 3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결승타를 치는 등[36], 대타로 기용되어 히트를 양산했고, 6월 20일 주니치전에서는 진구 구장에서 7회말 2사 2점 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하여 6월 종료 시점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다.[37] 그 기세는 후반전에도 이어져, 8월 말 시점에서도 타율은 3할 6푼 전후를 기록했다.[38] 9월 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32경기 연속 무실점 중인 치아고 비에이라를 상대로 일시적으로 역전 적시타를 쳤다.[39] 최종적으로 마나카 미쓰루에 이은 대타에서의 시즌 30안타를 쳐, 타율도 0.372, 출루율 0.419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40] 득점권 타율도 4할을 넘어,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도 많이 날려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41] 한편, 최근 몇 년간의 부상을 고려한 영향인지 시즌 초부터 역할은 대타로 고정되어 선발 출전은 시즌 1번도 없었고, 수비는 후반 대타 후 1루수로 돌아가는 역할을 몇 경기를 한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대타 외의 안타는 2개에 불과했다.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는 오릭스와의 접전 끝에 12회초, 요시다 료로부터 역전 적시타를 쳐 팀 20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42] 경기 후에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43] 또한 이 해 포스트 시즌은, 10월 26일 DeNA전 타석에서 발병한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을 안고 출전했다. 가와바타는 당시를 "달리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환부에 테이핑을 칭칭 감고 출전했다."라고 후에 말했다.[44] 오프에 3,0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5,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5]
2022년에는 5월 21일 요코하마전에서 2020년 8월 28일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6번 1루수")했다.[46] 7월 4일에 말소되어, 2군 조정을 거쳐 9월 16일에 재등록되었다. 17일 주니치전에서는 12회초 대타로 출전하여 2점 적시타를 쳐 한때 3-1로 역전했지만, 그 뒷면에 스코트 맥거프의 난조로 동점을 허용하며, 3-3 무승부로 끝났다. 같은 시즌은 전반의 부진이 이어져, 최종 타율은 0.175로 저조했다. 12월 2일, 삭감 한도를 넘는 50% 삭감된 추정 연봉 2,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7]
2023년에는 개막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4월 4일에 1군에 등록되었다. 4월 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적시타를 쳐 무승부를 만드는 등 결과를 내며, 다시 대타의 비장의 카드로 기용되는 횟수가 늘었다.[48] 6월 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3번 DH로 맹타상을 기록하며 팀의 연패 탈출을 이끌었다.[49] 후반기에는 한때 부진에 빠졌지만, 최종적으로 타율 0.319, 출루율 0.385를 기록했다. 대타 안타 수는 리그 1위인 20개. 7월에는 두 번의 결승타를 쳐 승리에 기여했다.
3. 1. 1. 2006년 - 2011년: 유망주에서 주전으로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3순위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다.[1]캠프를 1군에서 시작했다. 개막 1군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2군에서 고졸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79경기에 출전했다. 10월 9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 출전(2타수 무안타)을 했고, 10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2번째 타석에서 공식전 첫 안타와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프로 첫 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2경기 만에 벤치에 올랐다. 구단 역사상 드래프트 회의를 거친 고졸 1년차 야수가 1군 경기에 출전한 것은 1경기에 출전한 도바시 가츠유키 이후 약 20년 만이었다.
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던 중 8월 22일 경기에 왼손 약지가 골절되어 재활로 인해 남은 시즌 출전이 불가능했고, 10월 중순의 피닉스 리그에서 실전에 복귀했다.
에 처음으로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10월 7일 주니치전에서 첫 타석에서 오가사와라 타카시를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에도 5월에 1군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주로 좌타 대타로 출전했지만, 8월 23일 연습 중에 또다시 오른쪽 어깨 통증이 발생하여 등록 말소되었다. 이후 1군 출전은 없었다.
, 한신 타이거스에서 후지모토 아츠시가 FA로 입단했다. 유격수 포지션을 오니자키 유지, 신인 아라키 타카히로 등과 경쟁했다. 개막 초에는 후지모토가 고정적으로 기용되었지만,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오니자키가 수비력을 살려 두각을 나타냈지만, 타격에 약점이 있어 7월 무렵부터 가와바타가 유격수 레귤러로 기용되었다. 이후 시즌 종료까지 유격수 포지션을 지키며 8번 타자로 팀의 후반기 약진에도 기여했다. 다카다 시게루감독이 시즌 중반에 휴양하면서 오가와 준지가 감독 대행을 맡아 가와바타를 적극 기용을 하였다.
, 개막전에서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가와시마 게이조가 히가시노 슌에게 사구를 맞아 골절되면서 선발 유격수로 정착했다. 시즌 중반까지 7번을 맡았고, 6번 미야모토 신야, 8번 아이카와 료지와 함께 "공포의 하위 타선"을 형성했다. 하지만 조슈 화이트셀, 이이하라 다카시의 부진과 부상으로 시즌 중반부터 3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9월 말에는 2할 9푼대로 타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부진에 빠져 10월 19일 왼손목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되었다. 병원 검사 결과 "왼손 TFCC(삼각 섬유 연골 복합체) 손상"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아(9월 14일 히로시마전에서 슬라이딩하다가 왼손을 땅에 강타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다.[6] 시즌으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3. 1. 2. 2012년 - 2016년: 전성기
2012년, 가와바타는 주로 3번, 5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298, 4홈런, 49타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를 넘어서는 성적이었다. 원래 유격수였지만, 미야모토 신야의 휴식일에는 3루수로 40경기 이상 출전했고, 시즌 막바지에는 1루수 하타야마 가즈히로의 부상으로 1루를 지키기도 했다.[6]2013년 4월 22일, 왼쪽 발목 관절 수술을 받고 실전 복귀까지 2개월이 걸릴 것으로 발표되었다.[7] 7월 9일에 복귀했지만, 컨디션 조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8월부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70경기에 출전, 규정 타석 미달에도 타율 0.311, 5홈런(규정 타석의 절반 정도 타석 수에서 역대 최고)을 기록했다. 9월에는 생애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오프 11월에는 타이완에서 열린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8]
2014년, 3루수 등으로 커리어 하이인 142경기에 출전하여 야마다 테츠토 등과 함께 타선을 이끌었다. 주로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공격형 타선을 구성할 때는 2번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타율 3할 이상, 10홈런(커리어 하이)을 기록했으나, 수비에서는 수비율 .957, 14개의 실책을 기록했다.[9] 오프에 2,9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8,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0]
2015년, 마나카 미쓰루 신임 감독의 구상 하에 2번 타자로 개막 선발 출전했다. 이후 팀 사정으로 3번을 맡았지만, 올스타 이후 야마다 테츠토가 3번으로 이동하자 2번으로 완전히 고정되었다. 리그 1위인 195안타, 타율 0.336으로 수위 타자와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7월 16일, 제1회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 1차 후보 선수로 선출되었고,[11] 9월 10일에는 일본 대표 후보 선수로,[12] 10월 9일에는 최종 로스터 28명에 선출되었다.[13]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연봉 8,500만 엔에서 대폭 인상된 추정 연봉 1억 6,000만 엔으로 4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부터는 모리오카 료스케로부터 물려받아 선수 회장에 취임했다.[14] 가와바타는 "다른 구단으로 가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계속 야쿠르트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라고 구단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15]
2016년,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으나,[16] 3월 2일 인플루엔자로 인해 사퇴했다.[17] 7월 1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자타구가 발에 맞아 교체되었고, 골절 진단을 받고 19일에 출전 등록이 말소되었다.[18] 9월 6일에 1군에 복귀했지만, 최종 성적은 전년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3년 연속 3할 타율을 유지했다. 4년 계약의 1년차를 마치고, 현상 유지인 1억 6,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9]
3. 1. 3. 2017년 - 현재: 베테랑, 그리고 대타의 신
추간판 헤르니아를 앓아 재활을 계속했지만, 증세가 악화되어 8월에 수술을 받았다.[20] 그 때문에 1군 출전은 없었다. 4년 계약의 2년차를 마치고, 2,0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1억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1]에는 "5번 3루수"로 개막 선발 출전하여, 개막전에서 2년 만의 홈런을 쳤다.[23] 다음 경기인 4월 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이마무라 타케시로부터 머리 부위 사구를 받는 사고를 당해[24], 뇌진탕 특례 조치로 4일에 등록 말소되었다.[25] 그 후 복귀했지만 타격 부진에 빠져 2군에서 재조정을 위해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 6월 6일에 1군에 복귀하여 컨디션을 되찾아[26], 타순은 주로 6번으로 3루수나 1루수로 출전했다. 7월 21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9회말 스즈키 히로시로부터 개인 통산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27] 또한 8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9회말 아데메스로부터 역전 끝내기 안타를 쳤다.[28] 최종적으로 97경기에 출전하여, 규정 타석에 미치지 못하고 타율 0.259로 완전 부활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요긴한 때에 승부 근성을 보였다. 이 해 시즌 안타 수가 77개로, 1개만 더 치면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4년 계약의 3년차를 마치고,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1억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9]
에는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4월 19일에 1군으로 승격되자, 다음 날 20일 주니치전에서 6회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대타로 출전하여 야나기 유야로부터 적시타를 쳐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30] 또한 9월 4일 히로시마전에서는 6회 대타로 출전하여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31] 하지만 허리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시즌 내내 부진했고, 37경기 출전에 타율 0.164로 마쳤다. 4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마쳐, 1억 엔 감액된 추정 연봉 4,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2][33]
에는 캠프부터 2군에서 조정했지만, 대타 요원으로 1군에 승격되어 7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진구)에서 나카가와 고타를 상대로 2년 만에 끝내기 적시타를 쳤다.[34] 하지만 39경기 출전에 레귤러로 정착한 이후 최저 타율인 0.128로 마쳤다. 연봉도 50% 삭감된 2,000만 엔이 되었다.[35]
에는 3월 3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결승타를 치는 등[36], 대타로 기용되어 히트를 양산했고, 6월 20일 주니치전에서는 진구 구장에서 7회말 2사 2점 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하여 6월 종료 시점에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다.[37] 그 기세는 후반전에도 이어져, 8월 말 시점에서도 타율은 3할 6푼 전후를 기록했다.[38] 9월 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32경기 연속 무실점 중인 치아고 비에이라를 상대로 일시적으로 역전 적시타를 쳤다.[39] 최종적으로 마나카 미쓰루에 이은 대타에서의 시즌 30안타를 쳐, 타율도 0.372, 출루율 0.419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40] 득점권 타율도 4할을 넘어,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도 많이 날려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41] 한편, 최근 몇 년간의 부상을 고려한 영향인지 시즌 초부터 역할은 대타로 고정되어 선발 출전은 시즌 1번도 없었고, 수비는 후반 대타 후 1루수로 돌아가는 역할을 몇 경기를 한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대타 외의 안타는 2개에 불과했다.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는 오릭스와의 접전 끝에 12회초, 요시다 료로부터 역전 적시타를 쳐 팀 20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42] 경기 후에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43] 또한 이 해 포스트 시즌은, 10월 26일 DeNA전 타석에서 발병한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을 안고 출전했다. 가와바타는 당시를 "달리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환부에 테이핑을 칭칭 감고 출전했다."라고 후에 말했다.[44] 오프에 3,0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5,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5]
에는 5월 21일 요코하마전에서 2020년 8월 28일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6번 1루수")했다.[46] 7월 4일에 말소되어, 2군 조정을 거쳐 9월 16일에 재등록되었다. 17일 주니치전에서는 12회초 대타로 출전하여 2점 적시타를 쳐 한때 3-1로 역전했지만, 그 뒷면에 스코트 맥거프의 난조로 동점을 허용하며, 3-3 무승부로 끝났다. 같은 시즌은 전반의 부진이 이어져, 최종 타율은 0.175로 저조했다. 12월 2일, 삭감 한도를 넘는 50% 삭감된 추정 연봉 2,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7]
에는 개막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4월 4일에 1군에 등록되었다. 4월 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적시타를 쳐 무승부를 만드는 등 결과를 내며, 다시 대타의 비장의 카드로 기용되는 횟수가 늘었다.[48] 6월 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3번 DH로 맹타상을 기록하며 팀의 연패 탈출을 이끌었다.[49] 후반기에는 한때 부진에 빠졌지만, 최종적으로 타율 0.319, 출루율 0.385를 기록했다. 대타 안타 수는 리그 1위인 20개. 7월에는 두 번의 결승타를 쳐 승리에 기여했다.
4. 국가대표 경력
가와바타 신고는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선출되었다. 3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86, 1타점을 기록하였다.
일본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다.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5. 1. 타이틀
5. 2. 수상
6. 개인 기록
- 첫 출장: 2006년 10월 9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5회초에 다나카 히로야스를 대신하여 2루수로 출장
- 첫 타석: 상동, 6회말에 나카타 겐이치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 첫 선발 출장: 2006년 10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2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7번 · 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 첫 타점: 상동, 5회말에 오타케 칸으로부터 중전 적시타
- 첫 도루: 2008년 8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2회초에 2루 도루 (투수: 오타케 칸, 포수: 이시하라 요시유키)
- 첫 홈런: 2008년 10월 7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2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2회말에 오가사와라 다카시로부터 우월 3점 홈런
- 1000안타: 2019년 4월 20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5차전(나고야 돔), 6회초에 야나기 유야로부터 좌전 적시타 ※역대 294번째
- 1000경기 출장: 2019년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2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6회말에 오시타 유마의 대타로 출장 ※역대 504번째
- 연속 경기 맹타상: 4 (2014년 7월 30일 - 8월 8일) ※구단 기록
- 올스타전 출장: 2회 (2015년, 2016년)
6. 1. 첫 기록
가와바타 신고의 첫 출장은 2006년 10월 9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으로, 5회초에 다나카 히로야스를 대신해 2루수로 출장했다. 같은 경기 6회말에 나카타 겐이치를 상대로 첫 타석에 들어섰으나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2006년 10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2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7번·2루수로 첫 선발 출장했고, 같은 경기 5회말에 오타케 간으로부터 중전 적시타를 기록하며 첫 안타와 첫 타점을 동시에 달성했다.
첫 도루는 2008년 8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기록했는데, 2회초에 투수 오타케 간, 포수 이시하라 요시유키를 상대로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첫 홈런은 2008년 10월 7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2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나왔으며, 2회말에 오가사와라 다카시로부터 우월 3점 홈런을 쳐냈다.
6. 2. 기록 달성 경력
- 첫 출장: 2006년 10월 9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5회초에 다나카 히로야스를 대신하여 2루수로 출장
- 첫 타석: 상동, 6회말에 나카타 겐이치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
- 첫 선발 출장: 2006년 10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2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7번 · 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 첫 타점: 상동, 5회말에 오타케 칸으로부터 중전 적시타
- 첫 도루: 2008년 8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2회초에 2루 도루 (투수: 오타케 칸, 포수: 이시하라 요시유키)
- 첫 홈런: 2008년 10월 7일,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2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2회말에 오가사와라 다카시로부터 우월 3점 홈런
- 통산 1000안타 : 2019년 4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5차전(나고야 돔), 6회초에 야나기 유야로부터 좌전 적시타 ※역대 294번째
- 통산 1000경기 출장 : 2019년 9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6회말에 오시타 유마의 대타로 출장 ※역대 504번째
- 연속 경기 맹타상: 4 (2014년 7월 30일 - 8월 8일) ※구단 기록
- 올스타전 출장: 2회 (2015년, 2016년)
6. 3. 기타
- 연속 경기 맹타상은 4경기로 2014년 7월 30일부터 8월 8일까지 기록했으며 구단 기록이다.
- 올스타전 출장은 2회로, 2015년과 2016년에 출장했다.
7.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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